맨유와 리버풀의 승부조작 스캔들 사건
1915년 4월 2일 올드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 대 리버풀의 리그 경기는 굴곡 많은 두 팀의 수많은 경기들 중 가장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경기로 남아 있다.
양 팀의 일부선수들이 맨유의 리그 잔류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위해 더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수익을 위해 경기 결과를 조작하기로 합의한 채 경기장에 들어섰던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1914/1915 시즌을 끝으로 리그가 중단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던 시점 이었다.
맨유는 시즌내내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고 리버풀은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가운데 펼쳐진 경기에서 맨유는 2-0 승리를 거뒀고 결과적으로 그 경기에서 얻은 2점은 맨유가 그 시즌 강등권을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해당 경기가 종료된후 언론과 경기장에 있던 팬들로부터 이상한 징후가 계속 포착되기 시작했다.
양팀 선수들이 경기 전에 맨체스터의 한 펍에서 만난 것을 목격했다는 팬들도 있었고, 경기 도중 일부 선수들의 플레이가 비상식적이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당시 경기를 취재했던 <맨체스터 데일리 디스패치> 의 기사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이 경기의 후반전은 아무 활기 없는 축구 그 자체였다. 경기 시간 22분을 남기고 2-0으로 앞서고 있던 맨유는 이미 그 상태에 만족을 해서 더 이상 점수 차를 늘릴 아무런 의지가 없어 보였다. 리버풀 역시 득점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외스포츠중계를 보는 팬들도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결국 경기 종료후 축구협회가 집중적인 조사 끝에 과거 맨유에서 뛰었다가 리버풀로 이적했던 재키셀든의 주도하에 세명의 맨유 선수와 네명의 리버풀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담자들은 그 즉시 축구계에서 영구추방 조치를 당했다.
맨유의 세 선수중 샌디 턴불과 아더 웰리는 곧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다른 한 선수인 에녹 웨스트는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법원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졌던 축구계에서의 추방 조치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45년에야 특별사면으로 해제되었다. 그가 이미 59세가 된 뒤였다.
그는 그로부터 24년이 더 지나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맨유가 첫 리그 우승과 FA 컵 우승을 차지했던 1900년대 초반의 영광이 마무리 되었다.
전쟁발발 직전에 터진 승부조작 스캔들과 망날 감독이 맨시티로 떠난 뒤 흔들리기 시작했던 맨유의 모습은 마치 그들이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겪을 구단 역사상 최악의 부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명분은 많을 것이다. 팀의 리그 잔류목적, 금품수수, 협박등 하지만 스포츠는 늘 정정당당해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 그것이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기 때문이다.